오늘 하루는 참 좋은 날이었다
그래 부모님과 싸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모님과 한바탕 소리 높여 싸운 나는 그 뒤로 모든 의욕이 확 사라져버렸다
그리고서 문을 걸어잠군 뒤 자신의 방에 쳐박혀 잠을 잔 것이다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자주 있는 일이다 먹던가 자던가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욕이 사라지는 쪽이었다 필연적으로 잘 수 밖에 없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계속 잤다
하지만 사람이 연속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은 보통 그 정도인 것이다
이틀 째 되던 날 드디어 눈을 떳다 그야말로 정말 당연한 이유로 눈을 떳다
배고파서
부모님과 시덥지 않은 이유로 싸우고 2일이나 계속 해서 잤으니 부모님도
아직 화가 덜 풀렸을 것이고 나도 부모님을 어떤 얼굴로 봐야할지 졸음이 가시지
않은 머리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까부터 느껴지는 묘한 감각에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이다 방 안에서 잤을텐데 바람이 분다
창문을 열어놓긴 했지만 바람이 불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등에 닿는 감촉이
단단하다 묘하게 직접적인 열기가 느껴진다 몸을 움직이니 까칠까칠한 무언가가
팔다리에 달라붙는다 마치 모래 위에 누워있는 듯한 그런 느낌
정신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그 느낌은 꿈이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역시 아니다 딱히 못 믿던 게 아니고 확인한 것
뿐이다 올려다보면 불그스름한 하늘이 있었다 석양에 물들어있는 듯 하지만 노을은
아니다 모든 하늘이 같은 색이니까 이게 하늘의 원래 색이라는 거다
고개를 내려 주위를 둘러보면 대체로 하늘과 비슷한 붉은 흙으로 덮힌 평야가 있었다
조금 먼 곳에 키가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외에는 딱히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시야가 닿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지...."
여기가 내가 살던 곳과 다른 세상이란 건 명백하다 지구의 어떤 곳에도 기본적으로
붉은 하늘이란 건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2일 동안 잠만 자서 체력도 없는 상태
며칠 간은 버티겠지만 며칠 후면 정말 절체절명의 상태가 되겠지
그렇다고 해서 식량을 찾아 돌아다니기엔 주위에 보이는 것도 없고 숲에서 눈에
띄는 걸 닥치는 대로 먹기엔 독이 들진 않았을 지 걱정된다
진퇴양난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그 자리에 누웠다
"누가 여기로 날 보냈는 진 모르지만 여기로 날 보낸 이유가 있다면 그냥
죽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다가올 때를 기다릴 뿐..."
다시 잠들었다 어두워지기도 하고 밝아지기도 했지만 완전한 어둠으로 뒤덮히는
일은 없어서 구름 때문에 어두워진 것인지 해가 저물어서 어두워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태양은 있는 건가? 하늘에는 안보이는데
중간 중간 잠에서 깨어 그런 걸 생각했지만 곧바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그그그그 으으으으 단조로우면서도 동물의 울음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소리였다
음은 하나지만 그 음안에는 명백하게 의사가 들어있었다 주로 적의와 경계를
순간 눈을 뜬 나는 곧바로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있는 것은 온 몸이 새까맣고 턱에 뿔 같은 걸 달고 있는 이상하게 생긴
난쟁이들이었다 이 곳이 지구가 아니란 걸 증명하게 되는 또 하나의 발견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딱 봐도 이 녀석들 나를 노리고 온 것이라는 게 중요하다
왜냐면 손과 발톱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자라있고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릭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내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녀석들은 대충 세어봐도 30... 평범한 인간인 나로서는
완전 대위기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격이었다
"젠장...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 아니었어? 겨우 이 놈들 먹이로 주려는 건
아니겠지!"
언제까지 누워있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나는 일어섰다 1:30이라는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일어선 것이다! 간단히 당해주진 않는다 녀석들의 키는 커봐야 50에서 70센티라는
정도일까 무릎을 살짝 넘는 키를 가지고 있었다 한꺼번에 덮쳐들어 몸의 자유를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승산은 있다 게다가 녀석들의 무기는 손톱 발톱 뿐... 그것도 상당히 작다
한번에 치명타라는 일은 일단 없겠지 내가 일어서자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덤벼보라고.... 이 검은 난쟁이들아!"
검은 난쟁이라면....드워프인가? 놈들이 덮쳐드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정신을 집중해서 녀석들의 공격에 대응했다 놈들의 패턴은 완전 단순하게 팔을
치켜들고 달려들어 일단 잡고 문다 그것 하나뿐이었다 일단은 잡히지 않게 사방에서
날아오는 놈들의 손톱을 피한다 피하며 적당한 놈의 팔뚝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한바퀴
빠르게 회전 팔을 붙잡은 한마리를 무기 삼아 회전력을 더해 다른 놈들을 공격했다
겉보기와 비슷하게 놈들은 은근히 약해서 그 공격 하나로 3분의 1이 날아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약간 어지러웠지만 바로 다음에 달려드는 놈에게 대응하기 위해 집중한다
내 어깨를 노리고 입을 벌리며 점프하는 녀석의 머리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살짝 튕겨오른 놈은 곧바로 팔다리를 늘어뜨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 쉽구만!"
길가의 고양이가 대량으로 달려드는 것이 더 위험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약했다
뭐하자는 건지 내가 자고 있을 때 고민하지말고 공격했어야지! 너무 태평하게
자고 있으니 함정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건 아니었다
주먹질 발갈질 한방에 나가떨어진 놈들은 일반 판타지로 생각하면 슬라임같은 적이겠지
방심하면 위험하지만 놈들은 힘뿐만 아니라 속도도 최저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방심하지만
않으면 질 생각이 들지 않는다
30마리에 달하는 수를 전부 쓰러뜨리자 배고픔이 더 심해졌다 나도 모르게 이 녀석들
먹을 수 있지않을까 하고 생각해버렸다 정체는 모르지만 생물인 것은 확실하니
먹으면 배는 부르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살점을 잡아 뜯어 한 입 먹는다는 야만스런
방법으로 녀석들의 고기를 먹었다
우물....우물우물
맛은 평범한 생고기 같은 느낌이다 딱히 맛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도 아닌
꿀꺽...
그래도 이 정도라면 배는 채울 수 있겠구나하고 안심한 순간
온 몸에 격통이 일어났다
"앜....크아악!"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배를 감싸쥐고 비명을 질렀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역시 이 녀석들은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먹자마자 이렇게 아프다니 무슨 복어독도 아니고...
게다가 신경을 죽이거나 혈액을 증고시키는 일반독과는 달리 근육이고 뼈고
온 몸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일반독이라면 이런 종류의 고통은 일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원인을 찾는 것보다도 먼저 고통에 견디지 못한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떳을 때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다시 놈들의 고기를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약한 독이라 조금 먹어서 치사량에 달하지 않았던것이다 역시
모르는 것은 조심해야한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까부터 뭔가 간질간질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 곳에는 원래는 없었던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뾰족하고 딱딱한 무언가....
그래 놈들이 턱에 달고 있는 뿔처럼 생긴 무언가다
"뭐야...이건 또...."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사태에 뭐라 할 말이 없었지만 만약 내가 먹은 생물의 특성을 가질 수 있게 된 거라고
가정한다면 지금의 사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언젠가 봤던 창작물 중에서도 이런 설정을 본 것 같은
느낌이 안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차례차례 생물을 섭취해가면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물론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은 인간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새로운 생물이 되는 거겠지
이 세상에도 인간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좀 꺼림찍해졌다 나는 인간을 그만두겠다! 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그래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 포기할 수 밖에 없지만 이미 턱에 뿔도 자랐다
시험 삼아 녀석들의 고기를 좀 더 먹어봤는데 이제는 삼키고 나서도 복통에 시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보다 맛있어진 듯한 느낌? 해체할 도구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은 지라 그냥
팔다리에 붙어있는 고기만 조금씩 씹어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30마리나 있었기에 상당한 양이었다
잠시 자리에 앉아 한 숨을 돌리던 나는 과거 이런 내용이 나오는 책에서 주인공들이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스테이터스! 메뉴! 인벤토리! 맵!"
게임에서 나오는 단어인 그것들은 창작물 안에서 꼭 이런 다른 세상에 찾아오면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나에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젠장 역시 픽션은 픽션이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은 배도 채웠겠다 어떤 존재건 간에 지적생명체가 살고 있는
곳을 향해야겠지? 적으로 판단해 공격받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평야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서 앞으로 마주치는 놈들을 쓰러뜨리고 먹어야겠지
방침이 정해진 나는 곧바로 걷기 시작했다 일단은 그냥 앞으로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른다
그저 한 방향으로 걸어나간다 방향이 헤깔릴 가능성도 있기에 일단은 유일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목표인 숲을 향해 나아갔다 숲이라면 동물이든 식물이든 먹을 것이 있을테고 말이다
몇 시간을 걸은 것일까 어쩌면 하루종일 걸었을지도 모른다
딱히 하늘의 밝기는 변함이 없고 시계도 없으니 자신이 몇 시간동안 이러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물도 마시지 않았는데 그다지 목이 마르지 않고 몸도 피곤하지 않았지만
숲은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 짧은 나무들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은 원근법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랜 시간 동안 걸어서 도착한 숲에는 내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솟아있던 것이다
이 나무에 오른 다면 분명 주위의 풍경도 조금은 알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무를 타고 내려올 자신이 없었다
10미터 정도까지는 아무것도 없는 그냥 기둥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포기하고 숲 안으로 향했다 이 숲이야말로 황야 보다 길을 잃기에 적합한 구조였지만
"하아 외로워 누군가 나와달라구 귀신만 아니면 환영할테니까"
혹시나 해서 살짝 큰 소리로 중얼거려 보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설마 이 숲에는 나무밖에 없는 건 아니겠지 하고 잠시 뒤에 있는 나무에 기댄 순간
물컹
머리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기분 나쁜 물렁함에 순간 닭살이 돋아 황급히 뒤 돌며 물러서자
나무에 붙어있던 커다란 도마뱀이 있었다 도마뱀도 나를 눈치챈 것인지 나무에서 내려와
나를 향해 돌고는 기다란 혀를 날름날름 내밀었다 놈의 크긴 지구에서 흔히 말하는 코모도왕도마뱀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아마 틀림없다 그 놈과 비슷한 수준의 파워와 스피드라면
맨 손인 내가 불리하다....그렇게 생각하며 제발 코모도 왕도마뱀처럼 입 안에 바이러스를 키우며
독 대신 사용하지말아달라고 빌었다 자세를 숙이며 녀석이 움직일 때를 기다리자 먼저 인내심이
바닥난 도마뱀이 움직였다 티비에서 본 것처럼 다리를 번갈아가며 몸을 양 옆으로 흔드는 보행법을
구사하는 녀석은 생각보다 느리게 다가왔다
"뭐...."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나올 정도의 느린 속도 녀석의 근육이나 크기를 볼 때 슬로우모션인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속도였다 허무하게 옆으로 돌아가 꼬리를 밟자 그대로 멈춰선 도마뱀은
나를 향해 몸을 돌리려했지만 남은 한 쪽 발로 머리를 짓밟자 어이없게 죽어버렸다
"뭐야... 괜히 걱정했잖아...."
지구의 도마뱀처럼 꼬리를 잡아당기니 쏙하고 빠지는 꼬리를 한 손에 들고 씹자
또 다시 전신에 격통이 달린다
"젠장 또냣!...."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이렇게 되는 건가 이 정체 모를 세상에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게 더 무서웠다 언제까지 먹을 때마다 고통을 느껴야하는 걸까
그리고 고통이 사라진 후 내 몸에는 도마뱀처럼 길고 단단한 꼬리가 자라있었다
시험삼아 잡아당겨보지만 도마뱀처럼 빠지지도 않았고 상당히 유연성이 있어 엉덩이로 앉거나
그대로 누워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꼬리가 방해되서 똑바로 누워자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꼬리 휘두르기라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 게 아닌가 좋게 생각하자 하고 시험 삼아
나무에 꼬리를 휘두르자 맞은 부분이 움푹 패였다 상당한 위력의 꼬리치기는 살짝 식겁했지만
써먹을 곳이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똑같은 나무뿐이고 나무열매는 커녕 제대로된 풀 한포기조차 없네.."
도마뱀 꼬리를 씹으며 걸어가는데 아무리 나아가도 계속 똑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거기다 땅에는 나무뿌리를 제외하면 불그스름한 흙밖에 없고 아까 그 도마뱀은 대체 뭘 먹고
사는 걸까싶었다
제법 커다란 도마뱀꼬리가 있는 덕분에 당분간 배고플 일은 없겠지만 숲이 넓어서 그런지
다음 먹잇감을 찾을 수가 없다 적어도 새 같은 게 나타난다면 잡아먹고 생긴 날개를 이용해
하늘에서 지형을 살펴볼 수 있을텐데...
그러다 문득 나무를 쓰러뜨려보면 어쩔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든 생각치고는 좋은 생각 같아서 바로 실행에 옮긴다 꼬리치기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습을 겸해서 여러 자세와 각도로 꼬리치기를 사용한다 꼬리치기가 작렬할 때마다 나무는
눈에 보일 정도로 움푹 움푹 파여나가더니 이윽고 으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일단은 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도록 쓰러지는 방향을 조절했기에 나는 쓰러지는 나무의 끝을 향해서
달라나갔다
역시!라고 할까 럭키라고 할까 나무의 끝이 있는 곳에는 날개 달린 생물이 있었다 비록 있는 것은
새가 아니고 박쥐였지만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3마리나 있었다 계속 해서 진동이 일어났을 것이지만
이 박쥐들은 간이 큰 것인지 아님 아직 낮이라 그런 건지 태평하게 낮잠을 자다 땅에 떨어져 기절한 것 같다
뭔가 좀 불쌍하지만 머리에 꼬리를 내리쳐 죽인 후 날개를 뜯어 먹었다
그리고 당연히 벌써 3번째 맛보는 고통을 견디어내고 날개를 손에 넣었다
이것으로 드디어 하늘에서 지형을 살펴볼 수 있다고 좋아했지만 은근히 하늘을 나는 것은 어려웠다
꼬릴 조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서 제대로 날 수 있게 된 것은 그 후로 한참 지난 후였다
낮게 날다가 떨어져서 땅 위를 구르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체감 상 50번은 구른 느낌이지만
용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적어도 팔 뼈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나는 연습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내가 땅 위를 구르는 소리에 놀란 듯한 발소리가 들려 날아서 쫒아갔다
제법 작은 소리였지만 놓치지 않은 것은 박쥐를 먹었기 때문일까 녀석은 빠르게 도망쳤지만
나는 나보다는 느렸기 때문에 어렵지않게 따라잡았다
그리고 눈 앞에 나타난 발소리의 주인공은 사슴이었다 아니 순록? 뿔이 굉장히 멋있는 녀석이다
사실 유니콘인가요? 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일단 뿔이 두개기에 유니콘은 아니겠지
녀석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흐흥 하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 녀석의 크기는
일반사슴에 비하면 2배는 큰 듯한 몸집으로 중형차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거기다가 하늘로 높게
치솟아있는 두 뿔은 딱봐도 날카롭고 예리한 것이 검을 연상시킨다 뿔의 두께를 생각하면
어딜 박던지 부러지기 전에 꿰뚫어버릴 것 같았다 마음 속으로 이 녀석의 이름은 소드디어일까
스피어디어일까 같은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 도망치기를 포기한 녀석은 나에게 돌진했다
"...? 뭐야 느리잖아"
아까 내가 뒤쫓았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였다 녀석의 다리가 어떻게 움직여서 어떻게 땅을 박차는 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아까 하늘에서 바라볼 땐 그렇지 않았는데 혹시 이것이 지구에서 달인들이 싸울 때
슬로우모션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던 그런 경지인걸까 하지만 나는 그런 단련이고 수련이고 해본 적이 없었다
어째서 슬로우모션으로 느껴지는 진 둘 째 치고 달려오는 녀석의 위로 점프하며 놈의 뿔을 두 손으로 잡았다
무거운 꼬리가 달려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물구나무 서듯 뿔 위에 거꾸로 선 나는 한번 팔을 굽히고 꼬리를 흔드는 반동을 합쳐 사슴을 공중에서 땅으로
내리 꽂았다
목이 부러진 사슴은 곧바로 숨을 거두고 나는 뿔을 씹어보았지만 역시 너무 단단해서 포기
사슴고기만을 뜯어먹었다 역시나 먹은 것은 뒷다리정도이지만 사슴은 털도 많아 은근히 먹기 불편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4번 째 고통
고통이 잦아든 후에는 턱에 있던 뿔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이마에 뿔이 생겨있었다 아까 그 사슴의
뿔을 3분의 1 정도 줄여놓은 듯한 형상으로 대각선 위를 향하다가 하늘로 솟아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상당히 멋있는 듯한 뿔이어서 턱에 난 뿔이 사라진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사슴을 먹은 뒤로도 말이라던지 도마뱀 박쥐 그리고 들개 같은 놈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녀석들을 차례차례 먹어치우면서 계속 나아가니 동물의 뼈가 잔뜩 쌓여있는 곳이 있었다
"영화 같은 데서라면 반드시 보스몹이나 식인종이 살 법한 곳이군"
나는 적당히 먹기 쉬워보이는 뼈들을 먹었다 혹시 처음 먹는 것이 있으면 고통이 일겠지만
여러 번에 걸쳐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제 기절따윈 하지 않는다 설령 적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일단 죽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이것들을 먹어 레벨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앞에 있는 것은
보스몹 여기는 보스몹을 쓰러뜨리기 전에 준비하는 보너스스테이지인 것이다 어떻게
이것들을 먹으면 레벨업이 된다고 생각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웬지 모르게 그렇게 느껴졌다
뼈들을 씹어 먹으니 몇 번 정도 고통이 일었지만 참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개나 박쥐 같은
동물을 먹었기 때문에 한껏 강화되있는 나의 감각에는 근처에 위험은 감지되지않았다 그렇다면
보스몹의 영역은 얼마나 큰 걸까 벗어날 수는 있는 건가
적당히 포식한 뒤 하늘을 날아 전진한다 달려가도 이제는 배고플 걱정도 없지만 속도는 나는 쪽이
빠르다 주변에 있는 동물들을 닥치는대로 사냥해가며 한 입씩 베어물고 전진했다
그 중엔 코뿔소처럼 생긴 두꺼운 가죽을 가진 녀석도 있었지만 놈을 들고 하늘에서 떨어뜨리자
알아서 박살이 나주었다 덕분에 쉽게 고기도 먹을 수 있었지만 어째서 이런 무거운 녀석을
들고 하늘을 날 수 있었는 지에 대한 건 넘어가도록 하자 그렇게 따지면 날개나 꼬리가 돋아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니까
"하지만 정말 이 녀석들은 뭘 먹고 사는 거지"
아무리 봐도 먹을 것이 없다 정말 동물들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아직 전부를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물도 없다 설마 산소만 마시고 살 수 있는 놈들인가 그런 거 치고는 고기가 맛있는데
숲에 들어온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계속 해서 앞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했지만
동물들을 사냥하느라 방향 감각이 이상해졌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체감시간으로는 이미
3일은 먹고 전진하고 사냥하고의 반복인데 아직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나가는 나무마다 표시를 해두었어야하나 하고 후회하던 순간
콰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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