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1층에 내려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길드직원은 그렇다치고 다혈질에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모를 것 같은 몇몇 모험자들까지 무릎을 꿇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이었다 이 나라 왕족의 권위는 그렇게 높은 건가
시선을 돌리자 문 앞에는 기룡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두 명의 기사가 서있었다 파란머리의 여성과 붉은머리의 남성 둘 다 비슷한 디자인의 순백색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여성용 갑옷의 디자인이 훌륭했다 여성의 라인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부위는 확실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세심한 무늬와 더불어서 노출도가 상당히 높은 모습에 무심코 이 갑옷을 만든 사람을 존경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잘 훈련되있는 듯한 기룡은 두 사람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조용히 바닥에 누워 기다렸다
그 모습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이 오오..하는 탄성을 내며 구경하고 있었다 와이번과는 또 다른 종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두 기사들 사이에 있는 것이 바로 문제의 공주겠지 딱 봐도 나는 공주다 나는 왕족이다 나는 기사단을 이끄는 높은 사람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 위엄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따르게 만들고 그녀가 내뿜는 기백은 왕족으로서 백성을 무릎 꿇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한 눈에 봤을 땐 왕족이어서 무릎을 꿇었나했지만 다들 이 기백에 눌려서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기백이니 위엄이니 하는 것을 제쳐두더라도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과 마치 하나하나 조각해서 만든 듯한 얼굴 풍만한 가슴 군살 하나 없이 바짝 조여진 몸매는 남녀노소 불구하고 쳐다본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갑옷은 옆에 서있는 여기사와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사실 그녀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울렸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성스러움 마저 느껴지는 모습에 여신의 화신이 아닌가 싶었다 적어도 저기서 무릎 꿇고 있는 몇몇 사람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겠지
얼굴은 한 눈에 반해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지만 하반신은 평상운전인 것이 그 증거다
덤으로 묘한 향기가 길드 건물을 채워나가는 것이 더욱 남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역시 공주님은 비누도 고급품을 쓰는 건가'
그런 실 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 공주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이 길드의 장인가?"
"옙 전하 리베론마을의 길드장 라울 제파드라고 합니다"
공주의 말에 길드장이 곧바로 가슴에 손을 얹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
길드장이 무릎 꿇자 뒤에 있던 이티느도 무릎을 꿇었기에 나도 분위기에 맞춰 무릎 꿇었다
'풀네임이 라울 제파드였나 제법 멋있네'
처음 본 비서 누나의 이름도 물어본 주제에 지금까지 몇 번 만났던 길드장의 이름은 몰랐던 것이 살짝 한심하게 여겨졌지만 뭐 상관없지
"음.. 헌데 그대의 뒤에 서있는 두 사람은 소개해주지 않는 것인가?"
공주는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을 뿐이지만 길드장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이 사람도 긴장하는 건가'
공주의 몸짓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히 폭력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의 것으로 보기엔 매우 사랑스러웠다
"핫...송구합니다 전하 이들은 이번 오크토벌을 수행한 A랭크 파티의 리더들로 이티느와 이스라고 합니다"
길드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티느가 고개를 숙인 채로 이티느입니다 하고 말했기에 나도 똑같이 이스입니다하고 말했다
길드장의 말을 들은 공주가 살짝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그 두사람이 2000마리의 오크를 토벌한 파티의 리더들이라고?"
"그렇습니다"
"2천마리의 오크들 사이에는 오크 킹도 존재했을 것이다 오크 킹의 친위대나 다름 없는 군세를 저들의 파티로 토벌해냈다라.."
믿지 못하는 걸까 랭크가 존재하는 이 세계라면
랭크가 높은 사람 혼자서 많은 적들을 무쌍하는 것도 가능할테고 애초에 오크는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것이다
대체 저 공주는 무슨 생각으로 의심하는 듯한 말을 하는 거지
"자세한 이야기는 그대의 집무실에서 듣기로 하지 안내하도록"
"옛!"
길드장이 그대로 일어나 한번 고개를 숙인 뒤 길을 안내했다 나와 이티느도 그를 따라 일어났지만 공주인 듯한 시선이 뒤통수에 콕콕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집무실에 들어온 공주는 근처의 소파에 앉았고 그녀를 수행하는 두 기사는 소파 양 쪽에 조용히 섰다 소파에 앉은 공주가 요염하게 다리를 꼬자 갑옷 밑의 치마가 움직이는 허벅지를 따라 들썩였지만 치마 속을 볼 수는 없었다 속옷이 없는 이 세계라면 저 치마 안은 노팬티! 곧바로 여성의 균열을 볼 수 있는 걸까? 싶어서 무심코 눈을 돌렸지만 아무리 그래도 귀족이나 왕족은 무언가로 가리고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듣도록 할까 오크 토벌에 향한 것은 두 파티 그 파티의 리더가 여기 있는 아름다운 여성과 어린 아이라는 것인가? 파티는 총 몇 명이고 랭크는 어떻게 되지?"
"예 전하 우선 저 이티느는 두 명의 동료와 파티를 맺고 있습니다 제 랭크는 480 그리고 두 동료는 440 420입니다"
"....400이라.. 확실히 보통 모험자들 수준은 아니지만 3명뿐이라고? 저 이스라는 아이가 리더라고 하길래 그대의 파티가 주력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공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내가 말하라는 거겠지
그런데 어쩌지 그대로 말해야되는 걸까 지금보다 훨씬 낮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에 랭크는 1000이 넘었다 480인 이티느를 그 정도인가라는 듯이 말하는 걸 봐서 1000정도는 엄청 강하다!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티느는 레일라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성인여성이다 꼬맹이인 나와는 설득력 차원이 다르다 여기서 내가 천이라고 답하면
왕족을 우롱했다고 검을 드리울 것이고 나는
그걸 참지 못해 반격한 뒤 공주에게 이런 저런 짓을....!
"네 놈! 전하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거냐!"
입을 다물고 어쩔 줄 몰라하자 가만히 바라보던 붉은머리의 남기사가 소리쳤다
누가 붉은머리 아니랄까봐 다혈질이구나 생각하는 순간 살짝 차갑게 느껴질 것 같은 차분한 목소리가 그를 제지했다
"브레이스 그만 하세요"
남기사의 이름은 브레이스인가 여기사가 제지하자 남기사는 그치만 리레아 하고 반론했다
"..조용히 하세요"
하지만 리레아라고 불린 여기사가 조용히 말하자 입을 다물었다
뭐야 이 여기사누나 초 맘에 든다! 쿨뷰티에 공주보단 못 하지만 몸매도 이쁘고 목소리도 이뻤다 어떻게 해볼 수 없을까
그렇지만 공주의 말을 계속 무시하는 것도 그렇고 대답은 해야겠지
"그 때 오크를 토벌한 것은 저를 포함해 4명
랭크는 가장 높은 사람이 530 낮은 사람은 400 정도입니다"
나를 빼고 말하기 위해 두루뭉실하게 말했다
그러자 사실을 알고 있는 이티느가 살짝 놀란 듯이 쳐다봐서 분위기 좀 읽으라고! 하고 눈빛으로 태클 걸었지만 공주는 그것을 놓치지않고 물었다
"그대는 티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530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리더인 그대는 530보다 아래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대는 어째서
어린아이의 몸으로 리더를 맡고 있는 거지? 난 이 나라의 공주인만큼 귀족들의 얼굴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만 자네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힘도 아니고 권력으로 파티를 이끄는 것도 아니라면 지혜인가? 하지만 지혜만으로 오크를 토벌할 수는 없지 사실대로 말하거라"
공주의 눈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것만으로 잘못했다고 머리를 땅에 박겠지만 나에겐 미녀가 눈을 찡그렸다는 감상밖에 없었다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보도록"
"파티의 인수와 랭크를 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험자는 제대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왕국에 해가 될 것 같다면 미리 싹을 자르겠다는 건가요?"
"이 녀석 무례하구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기사 브레이스가 소리쳤다 여기사 리레아도 조용하게 서있지만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제법이구나 나의 앞에서 주눅들지 않는 것도 그렇고 브레이스의 살기 앞에서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지 파티의 리더가 될 정도의 배짱은 있어보이는 군 그대의 말이 맞다
본래 오크 토벌은 우리들 백은기사단을 포함한 국가기사단이 출진하면 어렵지 않게 토벌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단을 이끌고 출진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지 그 동안 백성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보수를 걸고 오크의 영향권에 있는 마을의 길드에 의뢰를 한 것이다
계획은 순조롭게 성공 오크 본대와 각지에서 집결하는 오크들 전부 토벌할 수 있었지"
"그렇다면 잘된 것 아닙니까?"
"그래 잘된 일이지 하지만 예상을 크게 웃돌 정도로 잘된 것이다 예상대로 모험자들이 오크를 막아내는 동안 내가 이끄는 백은기사단이 오크를 섬멸했다 그리고
오크 본대는 왕국 제일이라고 불리는 흑철기사단이 토벌할 예정이었지 하지만
길드에 의뢰를 낸 지 3일도 안되서 토벌완료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것도 이 작은 마을에서 말이지 쉽게 믿을 수 있겠느냐? 거짓이라면 어떻게 오크를 토벌한 것인지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모험자인지
내가 직접 확인하러온 것이다"
예상이 들어맞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인지 확인하러 왔다면서 공주가 오다니
갑옷은 무척 어울리고 나름대로 전투에 익숙해보인다만 정말 강한 사람의 실력을 잴 수 있는 건가?
"오크 2천마리를 토벌한 모험자의 힘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군요...만약 혼자서 2천마리를 압도하는 모험자가 있다고 치고 공주님이 그를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걱정되서 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만에 하나 손상 되기라도 하면
인류 전체의 손실이겠지
하지만 내 말을 들은 길드장은 얼굴을 파랗게 물들이고 나를 바라봤다 이티느는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면 이제 어쩌지 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조용히 있던 파랑머리 여기사 리레아가 소리쳤다 오히려 멍하게 있던 브레이스가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그 앞에 앉아있던 공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잠시 후 작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핫 이 내가 이런 어린 아이에게 걱정 받을 줄은 몰랐구나! 백은기사단을 이끄는 나 그라세니아가 모험자 하나 상대하지 못할 성 싶은가!"
공주가 아름다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지..진정하십시오 전하!"
길드장이 다급히 그녀를 말리지만
"길드장 작은 마을이지만 길드전용 훈련장이 있겠지 당장 안내하도록"
"그라세니아 전하 설마 저런 꼬맹이를 직접 상대하시려는 겁니까!?"
공주의 말에 남기사 브레이스가 저런 놈은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라는 늬앙스로 말했다
"이 내가 어린아이한테 무시당하고 있는다면
백은기사단 단장의 위엄이 서지 않겠지 물러서라 브레이스"
"하지만..."
브레이스는 마지 못해 물러서지만 곧이어
파란머리의 여기사 리레아가 공주의 앞에 무릎 꿇고는 말했다
"전하께서 이런 어린 아이를 상대하시는 것이 더 위엄이 서지 않는 일입니다 여기는 저 리레아 프레아드에게 맡겨주십시오"
"....리레아 그대까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전하!"
일어나서 나를 돌아보는 리레아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래도 다행이다 공주 상대로는 꺼림찍하지만
여기사정도는 마음껏 가지고 놀아주지'
"길드장 훈련장으로 안내하도록 브레이스는 훈련장에 결계석을 설치하라"
"알겠습니다 전하!"